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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요양시설에서 편안하게 마지막을 맞는다"는 게 당연히 가능한 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사로 일하면서 알게 된 현실은 달랐습니다. 요양시설 입소 노인의 절반 이상이 임종 직전 병원으로 옮겨진다는 통계는, 상담 현장에서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던 그 바람과 너무 거리가 멀어서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57%가 병원에서 마지막을 맞는다는 숫자 뒤에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처음 접했을 때 저도 적잖이 놀랐습니다. 사망 3개월 전까지 요양시설을 이용했던 수급자 가운데 시설에서 임종을 맞은 비율은 40.5%에 불과했고, 57%는 임종 직전에 병원으로 이송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
수치만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저는 이 숫자 하나하나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압니다. 오래 지내던 방을 떠나 낯선 응급실 들것에 실려 가는 어르신이요. 장기요양(長期療養)이란 노인이 일상적인 활동을 혼자 하기 어려울 때 장기간에 걸쳐 돌봄을 제공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그 돌봄의 공간이 시설인데, 정작 마지막 순간에는 그 공간을 떠나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게 이 연구의 핵심입니다.
병원 이송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급성기 증상이나 통증 조절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병원으로 가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문제는 임종기(臨終期), 즉 회복이 어렵고 죽음이 가까운 시기임에도 의료적 처치를 이어가기 위해 이송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임종기에 병원으로 옮겨지면 응급실 이용과 입원이 늘고, 의료비 부담도 커진다는 사실이 같은 연구에서 확인됐습니다. 오래 지내던 곳을 떠나는 고통과 가족의 경제적 부담이 동시에 생기는 셈입니다.
상담실에서 들은 어르신들의 진짜 바람
제가 직접 겪어보니, 사전연명의료의향서(事前延命醫療意向書) 상담은 단순히 서류를 작성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본인이 의식이 없거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상태가 됐을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기록해 두는 문서입니다. 법적으로 효력이 있고,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에 근거합니다.
그런데 상담을 하면서 제가 느낀 건, 어르신들이 이 문서를 쓰러 오시는 이유가 단순히 "기계에 연결되기 싫어서"만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자식한테 짐이 되고 싶지 않다"거나 "익숙한 데서 편하게 가고 싶다"는 말씀을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그 말이 지금도 귀에 남아 있습니다.
그때 느낀 건, 서류보다 대화가 먼저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르신이 충분한 설명을 듣고 스스로 결정하도록 돕는 과정이 절차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임종기가 되면 본인이 직접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깁니다. 인지기능이 저하되거나 의식이 흐려지면 아무리 좋은 의향서가 있어도 가족이 갑작스레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래서 건강할 때 미리 이야기를 나눠두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시설 임종을 가로막는 구조적 한계
가족들이 요양시설에서의 임종을 원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익숙해진 공간, 얼굴을 아는 요양보호사, 생활 습관을 잘 아는 간호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치매(癡呆), 즉 기억력과 판단력이 저하되는 인지기능 장애를 가진 어르신에게는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 자체가 극심한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이론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시설에서의 임종이 어려운 걸까요? 크게 보면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 시설 내 의료 인력이 부족합니다. 계약의사(契約醫師)란 요양시설과 계약을 맺고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입소자를 진료하는 의사를 말하는데,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임종기 상태 변화에 즉각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 완화의료(緩和醫療) 연계가 미흡합니다. 완화의료란 치료보다 통증 완화와 심리적 안정에 집중하는 돌봄으로, 임종기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의료이지만 요양시설과의 연계 체계가 아직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 임종 돌봄에 대한 수가(酬價)가 없습니다. 수가란 의료나 돌봄 서비스에 대해 보험이 지급하는 비용을 말하는데, 시설에서 임종기 돌봄을 제공해도 이에 상응하는 수가가 없어 시설이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 의사결정 지원 체계가 부족합니다. 가족이 갑작스럽게 이송 여부를 결정해야 할 때 이를 도와줄 표준 절차나 상담 인력이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시설에 책임을 넘기면 해결된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건 구조를 바꾸지 않고 사람에게만 짐을 지우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설이 임종 돌봄을 제대로 하려면 계약의사, 간호인력, 완화의료 연계, 수가 마련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어르신의 의사가 실질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웰다잉을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웰다잉(Well-dying)이란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존엄하게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을 말합니다. 최근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이 개념이 점점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도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중심으로 관련 정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출처: 보건복지부 연명의료결정제도)
그런데 제가 현장에서 느끼는 건, 제도가 있어도 준비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점입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자식들이 알아서 하겠지"라고 말씀하시는 어르신도 계시고, 반대로 "이야기를 꺼내면 자식이 상처받을까 봐"라며 혼자 결정을 미루시는 분도 계십니다. 양쪽 모두 결국 임종기에 가족이 갑작스럽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을 만듭니다.
요양시설에서도 어르신의 의사가 존중되려면, 입소 초기부터 가족과 시설, 의료진이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의향을 기록해두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호스피스(Hospice)란 임종이 가까운 환자가 편안하게 마지막을 맞을 수 있도록 신체적·심리적·영적 돌봄을 제공하는 서비스인데, 이런 호스피스적 접근이 병원만이 아니라 요양시설 안에서도 가능해지도록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에서 죽을 것인가"보다 "어떻게 마지막 시간을 보낼 것인가"가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웰다잉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지 않습니다. 건강할 때 가족과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두고, 요양시설이라면 입소 시점부터 임종 돌봄에 관한 생각을 기록해 두는 것이 시작입니다. 저도 상담사로서 그 대화의 첫 문을 여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일합니다. 이 글이 가족과의 대화를 조금이라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법률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https://www.nhis.or.kr/nhis/together/wbhaec07800m01.do?mode=view&articleNo=11008171&article.offset=0&articleLimit=10, https://www.yna.co.kr/view/AKR20260807099300530, 출처: 연합뉴스, 「노인요양시설 임종 돌봄 늘었지만, 절반은 병원서 마지막 맞아」, 2026년 8월 8일 연합뉴스 원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