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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을 하면서 지역에 따라 의료 접근성이 얼마나 다른지를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정부가 AI를 활용해 지역·필수·공공의료 공백을 줄이는 전략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기술이 가져올 변화와 그 한계를 현장에서 보이는 것들과 함께 솔직하게 정리해 봤습니다.
의료접근성, AI가 실제로 바꿀 수 있는 것들
솔직히 처음엔 'AI가 의료 공백을 메운다'는 말이 좀 추상적으로 들렸습니다. 그런데 상담 현장에서 고령 어르신들을 만나다 보니, 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분이 영상 검사 한 번을 받으러 두 시간 넘게 이동하거나, 작은 병원에서 찍은 CT를 큰 병원에서 다시 찍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두 번 들은 게 아닙니다.
정부가 추진 중인 AI 기본의료 전략은 2027년부터 보건소와 보건지소 같은 지역보건의료기관에 영상판독 보조 AI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영상판독 보조(AI-assisted image reading)란 의사가 CT나 MRI 같은 의료 영상을 판독할 때 AI가 이상 소견을 먼저 표시해 주는 기술로, 판독 시간을 줄이고 놓칠 수 있는 소견을 보완하는 역할을 합니다. 지역 보건소 의료진이 하루에 수십 명을 보면서 영상까지 꼼꼼히 들여다보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이 보조 도구의 실용성은 분명히 있어 보입니다.
여기에 의무기록 자동 생성 기능도 함께 도입될 계획입니다. 의무기록(EMR, Electronic Medical Record)이란 진찰 내용, 투약 이력, 검사 결과 등을 전자 형태로 기록한 환자 정보 문서를 말합니다. 의료진이 진료 후 기록 작성에 쏟는 시간을 줄이면 환자와의 실제 대면 시간이 늘어날 수 있다는 논리인데, 저는 이 부분이 특히 설득력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담하면서 느끼는 건데, 어르신들은 내용을 한 번 들어서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료진에게 같은 질문을 두 번, 세 번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면 그게 곧 의료 질의 향상입니다.
섬이나 산간지역처럼 이동 자체가 어려운 곳에서는 방문간호사와 원격지 의사, AI를 연결하는 비대면 협진(teleconsultation) 방식도 활용 가능합니다. 비대면 협진이란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영상 통화나 디지털 데이터 공유를 통해 전문의의 소견을 받는 진료 형태를 뜻합니다. 이것이 제대로 자리를 잡는다면, 거주 지역 때문에 진료를 포기하는 상황은 분명히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응급통합 AI 플랫폼, 기대와 현실 사이
응급의료 분야에서 AI 활용을 가장 기대하는 분들도 계시고, 반면에 '기술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입장을 가진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두 시각 모두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제 경험상, 이 둘은 사실 대립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는 환자 상태와 병원별 진료 역량, 이송 거리를 종합 분석해 최적의 병원을 찾아주는 응급통합 AI 플랫폼 구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응급통합 AI 플랫폼이란 응급환자 발생 시 전국 의료기관의 수용 가능 여부와 전문의 배치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이송 결정을 돕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기존에는 119 구급대원이 여러 병원에 전화를 돌려가며 수용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골든타임을 놓치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지적돼 왔습니다.
여기에 더해 전국 72개 권역·지역 책임의료기관을 연결하는 '공공의료 AI 고속도로'도 2029년 완성을 목표로 추진 중입니다. 2026년 하반기 9개 기관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출처: 보건복지부). 병원을 옮길 때 환자 영상이나 진료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이는 것도 이 시스템의 목표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는 솔직히 한 가지 걱정이 생깁니다. AI가 아무리 빠르게 최적 병원을 찾아도, 그 병원에 전문의와 비어 있는 수술실이 없으면 결국 환자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인프라의 문제입니다. 기술은 연결해줄 수 있지만, 연결될 자원 자체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점은 정책 설계에서 빠져선 안 되는 대목입니다.
AI가 의료 문제를 해결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AI는 문제를 가시화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도구이지, 부족한 자원 자체를 만들어내는 도구는 아닙니다. 응급환자 이송 개선 사례를 실제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는 논문도 이 시각을 뒷받침합니다(출처: PubMed Central, AI in Emergency Triage).
의료인력 없이 AI만으론 한계가 분명하다
상담 현장에서 제가 계속 생각하게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처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제도를 설명할 때, 태블릿 화면을 보여드리면 당혹스러워하는 어르신들이 꽤 됩니다. 손가락을 어디에 갖다 대야 할지 몰라 멈추시거나, 글씨가 작아서 안 보인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AI 기반 의료 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기술보다 먼저 사람의 안내가 필요합니다.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란 디지털 기기와 서비스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고령층에서 이 격차는 생각보다 큽니다. AI 의료 시스템이 아무리 잘 만들어져도, 사용자가 접근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기술 도입과 함께 고령자를 위한 접근성 지원 인력이 반드시 함께 설계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지역의 의료인력 부족입니다.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같은 필수의료 분야의 전문의가 지방에서 계속 줄고 있다는 건 통계로도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AI가 의사 없이 혼자 환자를 진료할 수는 없습니다. 다음은 AI 의료 정책이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 병행돼야 할 핵심 과제들입니다.
- 지역 필수의료 전문의(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응급의학과 등) 확충 및 정착 지원
- 간호인력 배치 확대와 방문간호 서비스 강화
- 지역 중소병원의 병상과 수술실 인프라 실질적 확보
- 고령층 대상 디지털 접근성 지원 인력 및 교육 체계 마련
- 의료데이터 공유 시 개인정보 보호 및 재식별 방지 제도 정비
의료데이터 보안 문제도 빠질 수 없습니다. 의료기관 사이에서 진료기록과 영상 데이터를 공유할 때 개인정보 재식별(re-identification)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재식별이란 익명화된 데이터를 다른 정보와 결합해 특정 개인을 다시 특정해 내는 것을 말하는데, 의료 정보처럼 민감한 데이터에서는 특히 엄격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데이터 활용 확대와 함께 제도적 안전장치를 병행 추진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지만, 실제 운영 단계에서도 이 원칙이 지켜지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AI 의료 정책의 성패를 판단하는 기준은 시스템을 몇 개 설치했느냐가 아닐 것입니다. 응급환자의 이송 시간이 실제로 줄었는지, 지역 의료진의 업무 부담이 체감될 정도로 낮아졌는지, 그리고 어르신들이 기술 때문에 오히려 소외되지 않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합니다.
기술이 앞서가는 속도보다 사람이 따라가는 속도가 느릴 때, 그 간격에서 소외가 생깁니다. AI 의료 전략이 효과를 내려면 기술 도입과 함께 의료인력 확충, 지역 공공의료 인프라 투자, 고령자 접근성 보완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디에 살든 필요한 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는 AI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현장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또는 정책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출처: 의사신문, 손의식 기자, 「AI로 지역의료 공백 메우겠다고? 의료인력·병상 부족은 어쩌고…」, 2026년 8월 10일 의사신문 원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