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북한 보위부가 찬양단을 만든다는 설정, 처음엔 그냥 자극적인 소재 아닐까 싶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가짜로 시작한 노래가 어떻게 사람의 진심을 건드리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스크린 속 이야기가 아니라 제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가짜 찬양단, 만들어진 배경 그리고 그 아이러니영화 은 대북 제재(對北制裁)라는 현실에서 출발합니다. 대북 제재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맞서 국제사회가 경제·외교적 압박을 가하는 조치를 뜻합니다. 이 압박 속에서 국제사회의 지원을 이끌어 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북한 보위부 소좌 박교순은 찬양단을 조직하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보위부(保衛部)란 북한의 국가보위성, 즉 정치·사..
첩보 영화를 보러 가면서 액션을 기대했다가 전혀 다른 감정을 안고 나온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그날 영화관 밖으로 나오면서 한동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스크린 속 총성과 추격보다 차가운 지하 공간에 갇혔던 한 여자의 표정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영화 제목인 '휴민트'가 그때서야 비로소 다르게 읽혔습니다. 줄거리, 블라디보스토크 낯선 도시에서 시작된 이야기휴민트(HUMINT)란 인적 정보활동(Human Intelligence)을 뜻하는 첩보 용어입니다. 기술이나 장비가 아닌 '사람'을 통해 정보를 얻는 방식으로, 냉전 시대부터 현재까지 각국 정보기관이 가장 오래, 가장 깊이 의존해 온 정보 수집 방법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저 낯선 단어였는데, 두 시간을 보내고 나오니 이 단어가 완전..
솔직히 저는 영화 오아시스를 처음 봤을 때 두 사람의 사랑이 안타깝다는 생각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올려보니 제가 놓친 게 너무 많았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2002년 작품 오아시스는 출소자 종두와 뇌성마비 장애인 공주의 관계를 통해 사랑보다 훨씬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줄거리, 종두와 공주 두 사람이 타자가 된 배경영화를 처음 접할 때 저는 종두를 그냥 어딘가 어설프고 눈치 없는 사람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는 가족에게도 사회에게도 이미 지워진 사람이었습니다. 교도소 출소 후 돌아간 집에서 환영 대신 불편함을 마주하는 장면은, 제가 봐도 꽤 낯부끄러울 정도로 적나라했습니다.공주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의 보호를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낡은 집에 혼자..